오늘(31일) 방송되는 KBS1 '인간극장'에서는 '경마의 여왕'이란 별명을 가진 김혜선 씨(37)의 삶을 들여다 본답니다.
지난 2009년 데뷔 후 지금까지 쌓은 승수만도 430승이 넘는 혜선 씨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그간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는 우수마들이 겨루는 '대상 경주'에서 열 차례나 우승했고, 지난 연말엔 한국 경마 최고의 무대로 뽑히는 '그랑프리(G1) 대상경주'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1922년 한국 경마가 출범한 이후 여성 기수가 국내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 10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급기야 지난 1일에는 국내 여성 기수 최초로 두바이에서 열린 '알 막툼 클래식'에 출전하기도 했다.
혜선 씨는 8살 연하의 후배 기수, 박재이(29) 씨와 결혼해 다섯 살배기 아들 찬이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부부가 모두 현역 기수이다 보니 아이를 인천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있다. 이에 혜선 씨는 마음속에 늘 미안함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여성 기수로서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편 '인간극장'에서는 강한 의지와 남다른 승부욕, 그리고 무엇보다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벽을 허물고 끝없이 도전하는 혜선 씨의 뜨거운 질주를 담아본다.
유리천장 깬 150㎝ ‘경마여제’… “콤플렉스였던 키가 무기 돼” -2024. 12. 27
김혜선(36) 기수에게는 ‘여자 경마 대통령’ ‘경마 여제’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체력적으로 우위에 있는 남성 기수를 선호하는 경마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도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기 때문에 붙여진 애칭. 실제로 김 기수는 여성 최초 대상경주(2017년), 300승 돌파(2021년) 등의 대기록을 쌓았다. 올해도 각종 대상 경주를 휩쓸었다. 올해 차지한 우승컵만 5개에 이른다. 그리고 지난 1일 끝난 제42회 그랑프리(G1) 대상경주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 그랑프리 대상경주는 한국 경마 최고의 무대. 김 기수는 단짝 글로벌히트와 탁월한 실력과 호흡을 뽐내며 함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지난 1922년 한국 경마 출범 이후 여성 기수가 국내 최고 자리에 오른 것은 102년 만에 처음이랍니다.
김 기수는 지난 19일 부산 강서구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마방에서 문화일보와 만나 “꿈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서 “그랑프리는 모든 기수가 우승을 꿈꾸는 대회다. 경마 기수의 삶을 시작해 그냥 우직하게 달려왔더니 이런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글로벌히트라는 좋은 말을 만났고, 한 해 최고의 경주에서 1등을 했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 기수의 키는 150㎝. 현역 최단신 기수다. 어릴 적 탁월한 운동 실력을 뽐낸 김 기수에게 작은 키는 늘 콤플렉스였다. 김 기수는 “핸드볼 등 운동을 좋아했다. 댄스도 좋아해 각종 연예 기획사를 찾아 오디션도 보러 다녔지만, 키가 걸림돌이었다”면서 “150㎝는 작아도 너무 작은 키”라고 말했다. 김 기수의 인생을 확 바꾼 것은 지난 2006년. 고교 3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고 있던 김 기수에게 큰 오빠가 경마 관련 다큐멘터리를 소개했다.
김 기수는 “여기 키 작은 사람도 할 수 있는 운동이 있다”는 오빠의 말을 듣고 곧장 TV 앞으로 달려갔다. TV에선 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경마 기수’라는 직업이 소개됐다. 김 기수는 “무엇보다 키가 작을수록 유리하다는 조건이 매력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해 2006년 개봉했던 영화 ‘각설탕’도 그녀의 결심에 도움을 줬다. 각설탕은 여자 기수와 말의 교감을 그린 영화다.
김 기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경마 기수 준비에 매진했다. 경마 기수엔 좋은 시력이 필수.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렌즈 삽입 수술을 받았고, 가족 모두가 김 기수에게 헌신하며 뒷바라지했다. 김 기수는 1년 뒤 경마교육원에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김 기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던 터라, 정말 죽기 살기로 준비했었다”고 말했다. 경마 기수 훈련생은 남녀 구분 없이 선발했지만, 김 기수는 ‘여성 기수’라는 선입견과 항상 싸워야 했다. 그녀는 기수 양성소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좋은 말은 모두 동기 남자 기수들에게 배정됐습니다.
김 기수는 당시를 떠올리며 “오기가 더 생겼다. 좋은 말은 다 다른 동기들에게 갔다. 동기들이 첫 승리를 거둘 때, 늘 나는 뒷전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새벽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먼저 훈련장에 나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말과 호흡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경마계에선 ‘김 기수가 유리천장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그도 그럴 것이 김 기수는 2017년 여성기수로서는 최초로 대상경주 우승을 차지했고, 2021년 300승, 2022년엔 하루 3개 국제교류경주 석권 등 굵직한 업적을 이뤄냈다. 남다른 승부욕과 성실함을 앞세운 결과다. 경마는 변수가 많고, 임기응변이 요구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그래서 플랜A는 물론 플랜B, C까지 마련하곤 하는데, 김 기수는 ‘플랜Z’까지 준비한다. 지략이 뛰어나고 두뇌 회전이 빠르며, ‘레이스’를 읽는 시야가 넓고 정확하다. 여기에 지고는 못 배기는 ‘악바리’ 근성도 한몫했다.
김 기수는 글로벌히트와 우승 상금 38억 원을 벌어들였다. 그런데 글로벌히트가 처음부터 주목받던 말은 아니었다. 김 기수가 타기 전 많은 기수가 글로벌히트의 고삐를 잡았지만, 까칠한 성격을 당해내지 못했다. 성적 역시 눈에 띄지 못했다. 김 기수는 지난해 1월부터 글로벌히트와 호흡을 맞췄다. 김 기수는 “정말 희한한 게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고 했는데, 저는 첫 경주부터 ‘아 정말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수말이지만 암말 같다. 그래서 교감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글로벌히트는 거칠게 다그치기보다는 섬세하게 달래줬을 때 힘을 더 낸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이 친구가 뭘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SNS에도 적었지만, 까칠한 아들을 잘 키운 느낌”이라고 껄껄 웃었다.
김 기수는 한국 경마에서 대표적인 ‘엄마 기수’다. 2020년 1월 8세 연하인 박재이 기수와 결혼했다. 현재는 5세 아들을 두고 있다. 김 기수는 “가족이란 단어는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하는 에너지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김 기수는 “아들을 출산하고는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 아들을 출산하고 더 많은 우승을 차지한 것 같다. 아들에게 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답니다.
김 기수에게 남편인 박 기수도 늘 고마운 존재. 김 기수는 우승 트로피를 집에 가져가지 않는다. 자신이 머무는 숙소 한쪽에 쌓아뒀다. 같은 일에 종사하고 있는 남편의 기가 꺾일까 봐 하는 이유에서다. 그랑프리 우승 후 처음 올해 우승 트로피를 모두 꺼내 기념사진을 찍었다는 김 기수는 “남편은 좋은 동반자이자 경쟁상대다. 남편이 잘하고 있을 땐 나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은 서로 자극제가 되는 것 같다”면서 “내가 우승을 했을 땐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졌을 땐 나보다 더 화를 낸다. ‘정말 나를 생각해주는구나’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설명했다.
김 기수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내년 1월 24일 세계 최고의 경마 무대로 꼽히는 두바이월드컵 예선전인 두바이레이싱카니발 알 막툼 챌린지(G1·1900m)의 출전을 앞두고 있다. 김 기수는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 기수가 말을 타고 나가는 것은 이례적이다. 국내에서 ‘유리천장을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국제무대에서도 꼭 이 말을 듣고 싶다”고 다부지게 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