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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Diary 2025. 4. 25. 11:04

한국행 택한 메이저리거 최지만 “군 복무 착실히 마치고 한국 야구팬 앞에서 뛰고파”
-2025. 4. 24

연장 12회말 2볼 2스트라이크. 탬파베이 레이스 타자 최지만은 차분하게 볼을 고른 끝에 낮게 휘어 들어오는 변화구를 특유의 부드러운 타격 자세로 걷어냈다. 우측 담장을 담담하게 바라보던 그는 홈에서 기다리는 동료들을 마주한 뒤에야 두 팔을 들어올리며 활짝 웃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가을 야구' 불씨를 살린 활약이었다. 최지만(34)은 미국에서의 야구 인생을 돌아보며 2019년 9월25일 끝내기 홈런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했습니다.


2009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고, 2016년 메이저리그 구장을 밟기까지 꼬박 7년. 인천 동산고를 졸업하자마자 미국으로 건너간 최지만은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을 펼쳐보이며 525경기에 출장해 367안타, 67홈런을 기록했다. LA에서 뉴욕으로, 밀워키를 거쳐 탬파베이로, 다시 피츠버그와 샌디에이고로 옮겨가며 쌓아올린 숫자는 후배들에게 이정표가 됐다.

한국으로 돌아온 최지만 선수를 지난 21일 인천 중구 인천일보TV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군 복무를 앞두고 모교인 동산고 야구부 창단 80주년 기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국내 야구팬 앞에서 한 경기만이라도 뛰어보고 싶다"며 2년 후를 기약했다.

야구 인생 갈림길에서 선택은 '한국행'

 지난 2월 최지만이 한국행을 고민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야수로는 추신수(SSG 랜더스 육성 총괄) 다음으로 많은 족적을 남긴 최지만의 앞날은 야구계에서 화제였다. 해외파 2년 유예와 병역 의무 이행으로 인한 공백,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 탓에 성공 가능성을 놓고 갑론을박도 벌어졌다.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3월 초에 귀국했는데 마음을 다스리고 정리할 일들이 있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일단 멈췄고, 야구 인생도 선택의 기로에 놓였는데.

"지난 2월 언론 인터뷰를 하면서 갈림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한국행을 선택했다. 일단 팬들과 약속한 군 복무가 먼저다. 그러고 나서 팬들 앞에서 한 경기라도 뛰고 싶은 게 목표다. 다음달부터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대체 복무를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2019년 풀 타임을 뛰고, 19개 홈런을 치며 주축 타자로 활약했다. 이듬해 한국인 타자 최초로 월드시리즈에 출장하면서 안타도 기록했다.

"그해 월드시리즈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도 안 해봤다. 동료들끼리 미팅할 때마다 '욕심부리지 말자. 오늘 하루만 보고 경기하자'고 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7차전 끝에 겨우 이기면서 월드시리즈에 올라갔다. 너무 힘들어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인 최다 안타를 기록한 것도 그때는 몰랐다. 월드시리즈에서 안타 치고 나서 그래도 이름 하나는 남겼다는 생각은 했다."

-오랜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16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처음 밟았던 경기를 정말로 기억하나.

"좋은 기억만은 아니다. 엔트리에는 들어갔는데 경기를 매일 뛰지 못했으니까. 실력이 안 되면 차라리 강등을 시켜 달라고 구단에 얘기했다. 그만큼 경기에 나가고 싶었다. 요즘은 메이저리그 올라갈 때 기념 영상도 찍어주고 축하해주는데 돌아보면 그런 추억도 없었다."

-당대 최고의 투수로 꼽힌 게릿 콜에게 4할대 타율과 홈런 3개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위력적인 공을 던진 투수 아닌가.

"난 잃을 게 없고, 저 선수는 잃을 게 많다고 생각하며 타석에 섰다. 직구에 워낙 자부심이 많은 선수였으니까 그 부분을 파고 들어갔다. 나중에는 다른 선수한테 95마일(153㎞) 구속으로 던지더니 내가 타석에 들어가니까 갑자기 눈빛이 바뀌어서 100마일(161㎞)짜리 공을 뿌리더라. 게릿 콜도 그렇고, 오타니 쇼헤이에게도 홈런을 쳤는데 평생의 술안주가 생겼다. 앞으로도 그 선수들이 계속해서 잘해주길 기원하고 있다.(웃음)"

동산고 야구인 집안 막내아들

어린 최지만에게 야구는 소꿉놀이와 같았다. 집에는 장난감보다 야구공과 방망이가 더 많았다. 아버지는 당시 동인천에 있던 축현초 야구부 감독이었고, 형은 아버지와 함께 야구 선수 꿈을 키우고 있었다. 혼자 집에 남은 최지만은 벽에 공을 던지며 노는 게 일상이었다.

-야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야구가 유일한 친구였다. 남들이 소꿉놀이를 할 때도 야구공을 만지며 놀았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일 수 있는데 야구를 사랑했다. 야구공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야구를 시켜보겠다고 하시니까 가족들도 '몸이 둔하다'면서 반대한 기억이 난다. 그 말을 들었으면 메이저리거 한 명이 나오지 않았겠지.(웃음)"

-야구인 집안인 줄은 몰랐다.

"아버지와 형 모두 동산고 야구부 동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야구를 알려주진 않으셨다. 야구부 감독이 따로 있고,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르니까 스승한테 배우라고 하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아쉬웠는데 지금 보면 올바른 지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마추어 선수들에게도 학교 야구부에서 배우는 게 우선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학부모들도 기술에 관한 부분은 전적으로 지도자를 믿고 맡겨주셨으면 한다."

-동산고 야구부가 올해로 창단 80주년을 맞았다. 전국적으로도 고교 야구에서 가장 빛난 역사를 지닌 학교로 정말로 꼽히지 않나.

"기운이 느껴졌다. 중학생 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동산고 성적이 매번 좋진 않았는데도 좋은 선수는 계속 나오는 게 신기했다. 선생님들이 학교 기운 덕분이라고 하셨다. 야구보다 인성을 먼저 가르치는 학교다. 지금도 모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학교가 잘돼야 야구부 후배들이 많이 생기고, 후배들이 잘돼야 우리도 도움받는다고 생각한다."

-동산고처럼 메이저리거를 잇따라 배출한 학교도 흔치 않다.

"예전부터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많았다. 류현진 형도 그렇고, 이번에 김혜성 선수도 LA 다저스와 계약했는데 그만큼 기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꾸준한 봉사와 기부로 지역사회 '선행'

최지만은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나 서흥초·동산중·동산고를 졸업했다. 메이저리거 시절에도 겨울이면 고향 인천으로 돌아와 연탄 배달 봉사에 참여하고, 지역사회 기부를 이어왔다. 코로나19 사태 때는 동구에 마스크 2만 장을 후원했다. 모교인 서흥초 야구부에는 해마다 재능 기부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야구 용품을 건넸다.

-지역사회 기부와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선행에 나선 동기가 있었나.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얻은 게 있으면 베풀어야 한다'고 배웠다. 메이저리그에서 돈을 벌면 기부나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연예인 기부나 봉사 기사도 찾아보고 했는데, 막상 실천해보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야구부 존폐 기로에 섰던 서흥초에 도움을 준 것도 인상 깊었다.

"결국 해체됐지만 어떻게든 야구부를 살리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고 기부했다. 모교 야구부가 사라졌으니까 슬프고 아쉬웠다. 지역사회가 잘돼야 학교 미래도 밝아지고,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다. 그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돈벌이가 없어서 기부를 못하는 게 아쉬우면서 스스로한테 화가 날 때도 있다."

-동산고 졸업 이후 16년 만에 한국행을 결정했다.

"2주 전쯤 잠실구장 관중석에 처음으로 갔는데, 경기를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이런 데서 경기를 하는구나. 선수들은 복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해보고 싶었다. 한국 야구팬들 앞에서 경기를 뛰고 싶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메이저리그와 야구장 분위기가 다르니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랐다. 학창 시절에 야구장이 이런 분위기였으면 미국에 안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때만 해도 야구가 침체된 상황이었다. 야구는 분위기 싸움인데, 이런 팬들 앞에서 응원을 받으면 좋은 성적이 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복무요원 기간이 21개월이니까 복무가 끝나면 2027년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려면 신인 드래프트를 거쳐야 하지 않나.

"2년 동안 군 복무를 착실하게 끝내고, 고향 인천에서 야구를 해보고 싶다.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을지 모르지만, 큰 욕심은 없다. 한국 프로야구 팬들 앞에서 한 경기만이라도 뛰는 게 제일 큰 목표인 것이다."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