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 부터 63년 전 오늘 8월 10일 향년 61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 우장춘 박사랍니다.
도쿄대학 농학 박사학위를 딴 뒤 고국으로 돌아와 해방된 조국의 식량난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 문화 포장을 받았으며 당시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우장춘 박사는 우범선의 아들로 매국노가 낳은 애국자로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간직한 인물이다. 그의 부친 우범선은 1895년 10월 명성황후가 일본 사무라이들의 칼에 시해된 을미사변 당시 조선군 훈련대 2 대대장으로 경복궁 궁궐 빗장 문을 여는데 조력하고 시해된 명성황후의 얼굴을 보고 신원을 확인한 인물이랍니다.
우범선은 을미사변이 있었던 다음해 일본으로 달아났다가 거기서 현지인 부인을 만나 자식까지 뒀으나 늘 살해 위협에 시달렸고 실제로 살해당해 생을 마쳤다.
아버지 부친을 여섯 살에 여윈 우범선의 아들 우장춘 일본 이름 우 나가하루는 도쿄 제국대학 농과대학에 입학하리만치 매우 총명했답니다.
도쿄 제국대학에서 1935년 종의 합성(Triangle of U)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럼에도 일본 학계에서는 조선인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워 요직이 아닌 한직을 떠돌았으며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항복을 선언하고 패망하자 해방된 대한민국은 그의 귀국을 추진했다.
직면한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 생산량을 끌어올려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육종과 육묘를 아는 인재가 필요했고 이 분야에서는 우장춘박사만한 적임자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우 박사는 일본의 갖은 회유를 물리치고 1950년 한국 땅을 밟았다.
“나는 내 자신만을 위해서도 아니고, 나라만을 위해서도 아니고, 전 인류의 복지를 위하는 심정으로 연구를 한다”던 우장춘 박사는 식민과 분단의 상흔으로 얼룩진 조국으로 돌아와 가난과 기근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재탄생하게 된답니다.
그의 귀국은 대학시절 만난 한국인 유학생이자 독립 운동가이며 친구였던 김철수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로부터 부친 우범선의 매국 행각을 접하고 이를 속죄하려면 아버지의 나라 조국에 봉사하는 길 밖에 없다고 여기고 우 씨라는 성씨를 끝까지 유지해야한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일본 국적이면서도 조선인으로서 갖은 차별과 모멸을 받으면서도 성씨를 바꾸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랍니다.
귀국 첫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장교로 입대해 소령으로 예편했다. 이후 초대 중앙 원예 기술원장(1953~1957년)을 지내며 외국에서 들여온 씨앗이 한국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개량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우장춘은 김치가 주요 식품인 한국의 식생활에 맞춰 배추와 무 종자를 만드는 작업을 우선을 삼았다. 1954년 신품종 배추와 무 종자의 대량 생산에 성공해 전국에 보급을 시작했다. 한국 배추와 무는 이때를 기점으로 독자적인 품질개량을 거듭해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육종 기술을 갖게 된 것이다. 남부와 제주 지역에 감귤 재배를 시도해 지금의 산업 기틀을 닦은 것도 바로 그의 노력 덕분이랍니다.
씨 없는 수박을 개발한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고 단지 육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씨 없는 수박 이야기를 예로 들었던 것이 훗날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한국 생활도 일본에서처럼 녹녹치 않은 삶이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으로 차별받았고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매국노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는 험난하고 고단한 인생을 감내해야 했던 것입니다.
매국노 우범선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녔고 일본에 두고 온 모친이 사망했으나 빈소조차 지킬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을 우려해 출국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고맙다 조국은 나를 인정했다.” 1959년 오늘 별세한 그가 귀환의 약속대로 조국에 뼈를 묻으며 남긴 마지막 말이다.
한일 두 나라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천재 농학자 고 우장춘 박사를 떠올리며 최근 일본의 극우 정치인이 했다는 “한일 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한국은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였으니 형과 아우의 관계라 할 수 있다”라는 망언을 생각하니 뒤틀린 한일 관계의 매듭이 자연스레 풀릴 수 있는 날은 아직도 요원한 것만 같아 씁쓸하기만 하답니다.